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배리 골드워터 (문단 편집) == 활동 노선 == 대외적으로는 매우 강경론자였지만, 당시 미국의 사회 문제 분야에서는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인 면모를 보였다. 예를 들어서 흑인 인종 차별은 '''매우 반대'''했고 NAACP와 National League on Urban Conditions Among Negroes 등 민권단체들의 애리조나 지부 창립회원이었다.[* 평생 이런 민권단체에 대한 재정적 후원을 지속해 1991년 Urban League는 "피닉스 지부에 대한 50년 동안의 충실한 봉사"(for 50 years of loyal service to the Phoenix Urban League)를 이유로 인도주의상을 수여했을 정도.] 게다가 애리조나 주방위군 창설에 참여했을 때는 연방군보다 2년 앞서 인종 통합을 시행했고, 피닉스 시의원으로서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 이전부터 인종 통합을 위해 노력했으며, 상원에서 흑인 인턴과 스태프를 고용한 최초의 의원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러나 손님에 대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 반헌법적이라는 이유로 1964년 민권법에는 반대표를 던졌다. 나중에 골드워터는 이를 회고하며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한 바가 있다. 막상 본인의 가족이 운영하는 백화점의 백인 전용 코너를 폐지하고 흑인 점원들을 고용한 행보를 고려했을 때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또한 낙태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달린 것이라며 찬성했고, 동성애자의 군 입대에 찬성했다.[* 그의 손자가 게이이다.] 골드워터의 이러한 면모는 정계에서 활동했던 20세기 중반을 기준으로 매우 드문 사례이다. 이는 그의 보수주의 사상이 자연법을 근거로 개인의 자유는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자유지상주의]]를 토대로 성립된 것이고, 이것을 침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강경하게 단호히 맞서 싸워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골드워터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평가한 큰 정부, 독재 정권, 공산주의에 평생 동안 강경하게 반대했으며, 자유의 적으로 간주되는 것에 대해 강경한 매파적 입장은 이러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개인적으로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인종 차별 문제는 연방 정부가 아닌 주 정부에서 해결할 일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남부와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었던 사실을 생각해 보면, 과연 인종차별 문제에 있어서 해결 의사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세부적인 면을 살펴보자면, 그의 주장은 인종 차별 문제를 인권 문제가 아닌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문제로 치환하려 한 것이었다. 핵심적인 내용은 인종 차별을 계속 유지하자는 것이지만, 겉보기에는 인종 차별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 민주당과 진보 세력은 그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 세우기가 어렵고 남부의 지지는 챙길 수 있어 일거양득이었다. 명확히 노예 문제로 일어났던 미국 내전을 '연방 정부의 압제에 대항한 주 정부들의 정당한 봉기'로 수정하고, 미국 남부가 미국의 개척자 정신과 카우보이 문화를 계승했으며 주 정부의 권리와 작은 정부, 감세 등을 강조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탁하던 남부인들에게 있어 골드워터의 주장은 아주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골드워터의 주장이 표면적으로는 인종 차별로 보이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인종 문제를 남부의 주 정부들에게 맡기자는 것은 인종 문제를 해결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에는 무력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남북 전쟁에 대한 왜곡이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2010년대까지도 남부 연합 육군기가 당당하게 휘날린 남부의 주 정부들이 과연 인종 문제를 진정성 있게 다루었을지는 의문이다. 컬러 텔레비전과 방송이 점점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에 대선 후보로 나선 정치인이지만, 골드워터는 컬러 사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배리 골드워터의 컬러 사진 숫자는 [[린든 B. 존슨]]의 컬러 사진에 비해 매우 적다. 컬러 사진을 싫어했던 이유는 "흑백 사진이야말로 인종에 관계 없이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평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정치계에서는 배리 골드워터의 흑백 사진 선호 행보에 대해, 정치를 하면서 [[프레임]]의 중요성을 상당히 빨리 깨달았던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본인의 계속된 강경 발언은 린든 존슨이 그를 "전쟁광"으로 몰아붙이는 데 이용되었고, 1964년 대선의 패배 요인이 되었다. 대선에서 참패했지만, 골드워터는 [[레이건]]과 [[조지 H. W. 부시|부시]] [[조지 W. 부시|부자]]를 거치며 공화당 주류가 되는 [[신보수주의]]의 시작을 알린 상징적 인물이다. 그의 사상을 들여다보면 현재 미국 보수주의에서 드러나는 [[신자유주의]], [[티 파티]], [[자유지상주의]]의 측면들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저들 중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부분으로서, 그의 사상은 현대 미국 공화당, 미국 보수주의의 원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